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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칼럼] "문제는 유통이 아니다" – 팜인사이트

윤석열 정부가 계속된 농산물 가격 폭등에 근본 문제를 해결겠다며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TF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유는 이번 물가 폭등이 농산물 유통업계의 불공정 관행과 담합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4월 12일 제17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혀, 허언이 아니라 무언가 혐의점을 잡았기 때문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이론에서 담합(談合, 카르텔 Cartel) 또는 짬짜미와 같은 불공정 행위는 과점시장에서 기업들이 이윤을 높이기 위해 상품의 판매 가격을 높이거나, 가격을 높이기 위해 생산 등 공급량을 조절하거나, 누구에게는 공급하지 않거나 어떤 지역에는 판매하지 않는 등을 모의해 실행해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담합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데, 최소한 시장이 과점상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짜고 가격을 높이거나, 수량을 조절하려면 입을 맞출 상대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단체 행동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적정 인원은 3~4명이다. 이보다 많으면 정보가 새어 나간다. 이 정도가 결탁했을 때 시장점유율이 최소 50%를 넘겨야 한다.
시장구조로만 봤을 때 농축산분야에서 가능한 품목은 우유와 닭고기뿐이다.
실상이 이런데 채소와 과일 가격 급등에 대응해 담합 여부를 조사한다니, 2016년 계란값 폭등했을 때 계란 수집상의 사재기 행위를 조사한다고 난리 치던 때가 생각난다. 계란유통상인들이 전체 계란의 60%를 산지에서 매입해 유통시키는데 이들간의 답합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당시 정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2016년 12월 29일, 정부는 계란 사재기와 관련해 67개소(대형마트 17, 중소마트 16, 계란유통업체 34)를 대상으로 조사했지만 사재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계란의 위생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계란유통업체 전수조사가 아닌 34곳이나 조사했다는 것은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플레이어가 계란 쪽에 없다는 걸 이야기한다.
그나마 유통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곳은 대형소매유통업체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GS리테일 등은 농축산물의 30~40%를 유통하고 있어 이들이 짬짜미 하면 유의미한 영향력은 발휘할 수 있다.
대형소매유통업체들끼리 구매단가를 담합이 가능할까? 이들의 지금까지 행태를 살펴보면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말에서 알수 있듯이 무조건 싸게 매입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번 정부의 조사는 가격을 높이는 행위이니 낮추려는 행동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대형마트가 비싸게 팔기로 결탁은 가능할까? 이들은 최저가 마케팅을 하는 곳이 아닌가? 매번 피 말리는 할인 경쟁을 하는 업체들이 판매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담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 청과도매시장에서의 담합행위 가능성이다.
서울 가락시장은 국내 최대 농산물도매시장이다. 여기에는 6개의 법인이 수십 년 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는 논란이 있다.
도매법인들이 담합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수수료를 담합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수수료는 법에 정해져 있으며, 징수할 수 있는 수수료 종류도 정해져 있으니 불가능하다.대표적 담합 행위 가운데 하나가 물량을 제한하는 행위인데, 이 또한 법에 금지되어 있다. 도매법인은 농가가 판매를 의뢰하는 것은 무조건 판매를 해야 한다.
가격은 중도매인이 경매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데 가락시장에서 활동하는 중도매인만 1천명이 넘고 매매참가인도 100명이 넘는다. 이들이 짬짬이를 하려면 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다 할지라도 정보가 금방 새어 나가 담합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정부가 탈탈 털면 소소한 부정행위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소한 부정행위가 채소값과 과일값을 폭등시킬 만한 것인지는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이번 과일과 채소 가격 폭등은 기후변화가 불러온 공급부족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일이다. 정부가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후보 때 사용한 선거 캠페인을 응용해 한마디 하려 한다. “바보야! 문제는 유통이 아니라 기후변화야.”(It's Climate change, not retail ,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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