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파일

[조하현 연세대교수 칼럼] 인당 명품소비 세계1위 '한국'의 수치스러운 자화상 – 한국아이닷컴

 
새벽 5시부터 텐트를 치고 백화점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대신 줄을 서 구매를 대행해준 뒤 성공 보수를 받는 아르바이트들, 인기 제품을 먼저 사려다 시비가 붙어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 모두 백화점 명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비롯한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명품 보복 소비가 몰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를 기점으로 도를 넘는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그러한 가격 인상으로 소비가 한 풀 꺾일 것으로 기대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오히려 명품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샤넬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오픈 런 열기에 다시 불을 지폈다.
명품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밸류를 인정받은 고급 제품’이다. 보통 ‘명품’이라 하면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등 패션 브랜드의 가방과 의류를 떠올리게 된다.
명품 브랜드를 떠올려보면 대다수가 유럽이 기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과 더불어 패션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이나 일본에는 없고 명품이 오직 유럽에 집중돼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역사와 문화의 깊이다. 파리, 밀라노, 런던과 같은 일명 ‘패션 수도’들은 수천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문화적∙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고유의 미학적 기반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기반에서 시작된 예술적 환경은 훌륭한 자양분이 돼 개성있는 디자이너들을 키워냈고, 그들의 브랜드는 자연스레 명품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1776년에 독립한 신생 선진국인 미국은 비교적 역사가 짧다. 효율성 중심의 빠른 성장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접근성’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이에 의류 디자인보다는 산업 디자인 분야가 중심이 되어 발전하는 등 명품 브랜드가 자리잡기엔 어려운 조건이었다.
둘째는 지리적 이점이다. 명품 산업은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고가에 판매하는 만큼 마케팅이 중요하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대면 마케팅에 의존해야 했다. 이때 30여개에 이르는 국가들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유럽의 지리적 환경은 큰 무기가 됐다.
실제로 20세기 이전까지 유럽은 상류사회의 유행패션을 보급하기 위해 ‘패션 돌’을 사용했다. 패션 돌은 프랑스 궁정의 최신패션을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왕실로 전파하기 위해 사용된 인형으로, 산업적으로 중요한 교류물품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 등 후발 선진국들은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어 상호간의 소통이 유럽만큼 수월하지 못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섬나라라는 특성상 해상무역 발달 전까지 대륙의 유행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장인 정신에 대한 예우의 차이다. 일부 대형 기업이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옛날부터 봉건제도가 자리잡아 지역사회 단위로 발전해왔기에 지역별 특색을 갖고 있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
지역별로 오랜 기간 한 곳에서 숙련도를 쌓아온 장인들이 많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 덕분에 몇 세기동안 이어진 가죽 업체, 염색 공장 등이 유럽 전역에 분포할 수 있었고 유럽 명품만의 경쟁력이 됐다. 
경제학에서는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를 ‘베블런 효과’를 들어 설명한다. 베블런 효과란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으로, 보통 상류층 소비자들의 과시적인 소비 행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최근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생겨난 보상심리가 과시욕과 결합하면서 일반 소비자도 상류층과 유사한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건재함을 보이는 방법으로 명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밴드왜건 효과’ 또는 ‘편승 효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밴드왜건 효과는 다수의 소비자나 유행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흉내내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로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잘나지는 못해도 뒤처지면 안 된다’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타인이 구매한 명품을 보고 자신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MZ세대(1980년~2000년대 출생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브랜딩하기 위해 명품을 소비하기도 한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브랜딩’이 흔한 현상이 됐다. 이런 젊은층에게 명품이 가진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 소비가 아닌 투자라는 생각으로 고액의 명품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유명 연예인들을 ‘브랜드 엠버서더’로 발탁하고 적극적인 협찬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는 2021년 유명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을 엠버서더로 발탁한 뒤, 2022년 매출 42% 증가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명품 소비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지며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 시장이 커지면 모조품 시장 즉, ‘짝퉁’ 시장도 함께 성장한다. 2018년~2022년 동안 적발된 모조품 시장 규모는 무려 2조 2400억원이었다. 특히 2022년 적발 금액은 약 5600억원으로 2021년 대비 140% 넘게 급증했다.
명품을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부 소비자들은 돈을 아끼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위해 짝퉁을 소비하지만,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 짝퉁을 제조하는 행위는 명백한 지적재산권의 침해로, 진품의 가치를 훼손해 소비자뿐만 아니라 창작자, 제조사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다. 결국 짝퉁의 제조와 소비는 국가 신용도를 낮추고 지하경제를 확대시켜 국가의 재정상태를 악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짝퉁의 제조-판매 수입이 범죄 조직의 활동 자금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의류 브랜드 타미 힐피거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모조상품의 지하경제가 어떻게 테러 단체의 돈줄이 되는지 설명하며 그 짝퉁 소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명품 소비가 계속 된다면 젊은층을 중심으로 과소비 문화가 번질 위험도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168억 달러(약 22조 원)이다. 인구 1인당 308달러(약 40만원)를 지출한 셈이다. 중국인(55달러), 미국인(280달러)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명품을 사는 데 썼는지 알 수 있다. 이 통계를 발표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세계 1위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특히 1인당 GDP가 2배 이상인 미국(7만 5000달러)보다 우리나라(3만 2000달러)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이 높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적이며, 우리가 얼마나 소득 대비 무리한 지출을 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국제 명품업계에서는 대한민국을 어리석은 ‘호구’로 취급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젊은 연령 그룹이 명품소비에 뛰어들고 있다는 현실이다. 전국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3 명품소비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품 시장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가운데 명품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가처분소득이 적기 때문에 명품의 가격을 지불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구매자금을 장기간 모아야 하는데, 계속해서 신상품이 출시되는 명품의 특성상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마련해야만 한다. 결국 과도한 할부와 대출을 선택하고 저축은 미루게 된다. 그렇게 쌓인 빚은 결국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명품이니까 구입하겠다는 맹목적인 소비를 경계해야 한다. 그 제품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현 소득수준에 맞는지 등을 감안해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한다. 그에 더해 사회적 분위기도 변화해야 한다. 과시적 소비를 경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사람의 외면적 측면을 구성하는 물건이 아닌 내면적 측면을 구성하는 인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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