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파일

매일 300여 가지 결정 내리는 와인 메이커 ‘크리스티 멜튼’ – 포춘코리아

와이너리의 전통을 살리면서 양조 과정에 혁신을 가져오려는 프리마크 아비 와인 메이커 크리스티 멜튼을 서울 중구 아영FBC 아카이브룸에서 만났다.
이세연 기자 mvdirector@fortunekorea.co.kr 사진 최근우
라벨을 제거하니 비로소 주목받게 된 와인이 있다. 바로 ‘변방 출신’으로 여겨지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이는 1976년 블라인드 테이스팅(라벨을 제거한 상태에서 와인을 시음해 우위를 가리는 방식) 대회에서 프랑스 최고급 와인보다 더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당시 대회는 충격적인 결과로 와인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이후 ‘파리의 심판’이라 별칭됐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나파밸리 1세대 와이너리 ‘프리마크 아비’는 당시 참여한 와이너리 가운데 유일하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톱 10에 선정됐다. 2017년 파리의 심판 40주년을 기념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의 심판’에서는 프리마크 아비의 ‘(1969년산) 카베르네 소비뇽’이 1위를 차지했다.
프리마크 아비는 1886년 나파밸리 최초의 여성 와인 메이커인 조세핀 티치슨(Josephine Tychson)이 설립한 와이너리로, 유서가 깊은 만큼 다방면으로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19년 차 와인 메이커인 크리스티 멜튼(Kristy Melton)과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과거 생명공학과 동물과학을 전공하고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암을 연구하는 등 과학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독특한 와인 메이커이다. 끌로 뒤 발, 캔달잭슨 등 여러 와이너리를 거치며 경험을 쌓은 후, 2018년 프리마크 아비에 합류했다.
Q 와인 메이커에 따라 와인 양조 과정이 생각보다 매우 복잡해질 수 있다고 들었다.
포도밭에서 양조장에 이르기까지, 와인을 양조하는 모든 과정에서 매일 300여 가지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디테일한 요소에도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와인 메이커의 스타일이 곧 와인의 스타일을 좌우하는데, 나는 구조감, 균형감 있게 양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균형감을 살리려면,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온전한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별된 포도 열매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고, 알맞은 일조량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포도가 과숙하기 전에 수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최적의 시기를 맞추고자 매일 포도밭에 나가 시음을 한다. 타닌감까지 확실하게 가졌을 때가 바로 수확 적기이다.
 
Q 19년 동안 와인 메이커로 일하면서 느낀 트렌드 변화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와인을 만드는 데 로버트 파커(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비자들도 이 같은 스타일을 많이 찾았고. 당시에는 잘 익은 과실 향에 알콜 도수가 높은 파워풀한 와인이 인기였다. 또 뉴오크(새 오크통)도 많이 사용했다.
반면 5~10년 전부터 현재까지는 포도 품종의 특성과 테루아(토양, 기후 등 재배 환경)의 지역성이 잘 나타나는 ‘내추럴한’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양조 과정에서는 복잡성을 줄이고, 알콜 도수도 너무 높지 않게 양조한다.
프리마크 아비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지역은 기온이 15도를 넘기기 쉬운 데다, 최근 기후 변화 영향으로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 것이 과제이다. 또 뉴오크 사용도 절제해 포도 본연의 맛을 살리고자 한다. 나 또한 이러한 내추럴한 스타일을 선호해 현재 트렌드에 만족한다.
 
Q 나파밸리 와인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 가운데 프리마크 아비 와인은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나파밸리 와인은 일반적으로 과실 향이 풍성하고 복합적이면서 균형감과 구조감 있는 스타일을 지닌다. 나파밸리 와인이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나파밸리 와인 생산량 비중은 전체 캘리포니아 와인의 4%에 불과하다),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프리마크 아비 와인이 차별화되는 점은 전통감, 균형감, 불변성, 일관성이다. 시간이 지나도 와인의 전통이 일관성 있게 유지돼, 어떤 와인을 오픈해도 균형감 있는 품질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테루아를 와인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도 프리마크 아비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특히 우리는 나파밸리 내 대표적인 와인 산지 러더포드의 싱글빈야드(Single vineyard, 단일 밭)인 보쉐와 시캐모어의 독점 소싱권을 가지고 있다. 러더포드는 흙 향이 두드러지는 지역이다. ‘러더포드 더스트(dust, 먼지)’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입자가 고운 먼지 같은 타닌감을 머금고 있어 실키한 느낌을 준다.
 
Q 나파밸리 지역은 대개 완벽한 지중해성 기후를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기후 변화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을 듯한데?
두 가지 빈티지 와인을 예로 들겠다. 2021년은 상당히 가물었고, 따뜻하고 짧은 포도 생장기를 보냈다. 수분 스트레스로 이때 생산된 포도알 크기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그만큼 타닌감과 집중도가 높은 파워풀한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했다.
반면 2023년에는 평년 강수량의 200%가 넘는 많은 비가 왔다. 따라서 서늘하고 긴 포도 생장기를 보냈다. 특이한 점은, 생장기 기온이 낮을 때 오히려 와인 색깔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 또 비가 많이 온 만큼 수확 과정에서 포도잎을 따 햇볕에 최대한 노출될 수 있게끔 하는 등 사후 대응을 통해 우아한 스타일을 입혔다.
결국 매해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기후 변화에 따라 역작이 탄생할 수도 있다. 관건은 ‘어떻게 대응하냐’이다. 매년 정해진 레시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해에 따라 발 빠르게 대응해 적절한 스타일을 입히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Q 젊은 와인 메이커로서 프리마크 아비에 특별한 변화를 주고 싶은 적이 없었는가?
‘젊은 와인 메이커’라는 말은 정말 고맙다. 칭찬으로 듣겠다. 아무래도 역사가 긴 와이너리인 만큼 처음에는 부담감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와인 생산 과정에 혁신을 가져오려 한다. (프리마크 아비를 소유하고 있는) 잭슨 패밀리 와인즈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꿈을 펼칠 수 있게끔 많이 지원해 준다.
지금은 와인을 항상 클래식하게 양조하는 것이 도전 과제이다. 그래서 신규 기술들을 몇 가지 도입했다. 과거 과학 분야에서의 경험이 와인 양조에 접목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옵티컬 솔팅 머신’을 도입해 솔팅 작업(상하고 깨진 포도알을 걸러내는 작업)을 기계화했다. 이 머신은 포도를 사진 찍어 포도알의 모양, 색깔, 수분도 및 얼마나 ‘건포도화’됐는지 등 모든 요소를 체크해 완벽한 포도알만 선별해 낸다.
또 발효 과정에서 아래쪽 와인을 위쪽으로 다시 뿌리며 포도 껍질과 포도즙을 섞어주는 ‘펌핑 오버’ 작업에도 자동화 기계를 도입했다. 과거에는 모두 수작업으로 하던 일이다. 인간이 펌핑 오버를 하루에 네다섯 번씩 진행하다 보면, 피곤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등 양조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자동화 기계를 도입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었고, 이는 일관성 있는 와인 양조로 이어졌다.
크리스티 멜튼 추천 프리마크 아비 와인 6종
프리마크 아비 샤르도네 2021
브리오슈 같은 구수한 빵 내음에 헤이즐넛 같은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뉴오크 비중을 높이고, 젖산 발효 과정을 일부 거친 덕분이다. 잠시 머금고 입안에서 굴리면 상큼한 레몬, 라임 등 산뜻한 과일 향이 올라온다. 입안을 강렬하게 사로잡기보다는 부드럽게 감기는 편이다. 경쾌한 산미와 미네랄이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프리마크 아비 메를로 2019
‘와인 입문자’가 접하기에는 가볍지 않은 와인이다. 오크의 강렬한 스파이시함이 혀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내내 이어지기 때문. 크리스틴은 토스트 레벨을 조금씩 달리해 6가지 오크 배럴을 제작했다. 서로 다른 레벨의 스파이시한 풍미를 복합적으로 담아내기 위함이다. 허브와 세이지가 나타내는 독특한 풍미에, 눈길을 사로잡는 진한 루비색이 황홀하다.
프리마크 아비 조세핀 2011
통통하면서 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와인병에 먼저 눈길이 간다. 조세핀 2011은 프리마크 아비의 설립자인 조세핀 티치슨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작한 와인으로, 연간 약 300병만 생산되는 ‘희귀 와인’이다. 다소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해 산미가 균형감 있게 잡혔다. 미디엄 정도의 우아한 바디감에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일품이다.
프리마크 아비 카베르네 소비뇽 2019
복잡미묘한 맛과 향이다. 이 같은 복잡미는 프리마크 아비가 소유한 모든 포도밭의 포도들을 활용한 덕분에 가능했다. 혀끝에서 바로 올라오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맛이 아닌, 여러 풍미가 조화를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코코아 파우더, 가죽의 잔향이 완성도를 높였으며 여기에 섬세한 타닌까지 갖춰 밸런스도 챙겼다.
프리마크 아비 시캐모어 2013
말린 허브, 계피, 블랙체리의 향긋함이 유혹한다. 강렬한 유혹의 뒤에는 집중도 높은 타닌이 강한 풍미를 안긴다. 이 타닌은 테루아에서 비롯됐다. 보통 포도 알의 크기와 타닌은 반비례하는데, 시캐모어 포도밭은 다소 언덕진 곳에 위치해 포도알의 크기가 작다. 하지만 거칠었던 타닌이 숙성 과정을 거치며 부드러워져 피니시 풍미를 잡는다.
프리마크 아비 보쉐 2003
어두운 루비색에서 알 수 있듯, 블랙체리와 검은 자두 등 어두운 계열의 과일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묵직하고 힘 있는 바디감이 입안을 감싸면서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타닌이 부드러워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와인을 시음해 보고 싶은 입문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 취향에 따라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source

Keep Reading

이전다음

댓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