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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나 '외압'은 의평원 평가 바꿀 수 없다" – 청년의사

사라진 서남의대 이름이 다시 의료계를 떠돌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이 한 번에 2,000명 늘면서 의학 교육 부실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양질의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서남대가 폐교된 지 6년 만이다.
서남의대는 지난 2017년 4월 의학교육 인증평가에서 불인증 판정을 받았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행정과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재정 확보가 최우선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서남의대는 설립자 교비 횡령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의평원은 "전체 평가 영역에 걸쳐" 서남의대가 "기준을 상당 부분 충족하지 못했다"면서 "학생의 학습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불인증 판정한다"고 밝혔다. 8개월 뒤, 교육부는 서남대 폐쇄를 결정했다.
지난 22일,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의대 30곳이 자체적으로 의학교육 인증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모두 '불인증'이다. 현재 교육 여건에서 증원하면 어떤 대학도 하반기 '주요 변화 평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2025학년도 개강까지 10개월 남은 시점에 시설과 인력 기준을 "하루아침에 보완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평원 인증을 못 받으면 정원 감축이나 신입생 모집 정지 처분될 수 있다. 졸업생이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평원 인증을 거친 대학을 졸업해야 국시 응시 자격을 갖춘다. 불인증 의대는 졸업해도 의사 면허는 취득 못할지도 모른다. 폐교도 불인증 처분 중 하나다. '제2의 서남의대'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2025년 입학생이 불인증 영향을 받는 점도 문제다. 의학 교육 질 저하를 감수하고 배출한 졸업생이 의사도 될 수 없다면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더 많은 의사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 정책 목표도 실패로 돌아간다.
의료계 일각은 의평원 평가에서 증원하는 의대가 대거 탈락하면 정부도 대규모 증원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서리라 예상한다. 한편 이를 막고자 정부가 의평원 심사에 압력을 가하리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19일 청년의사와 만난 안덕선 의평원장(연세의대)은 "평가는 '기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시에 '외압'으로 "평가를 바꾸지도 않는다"고 했다. 평가는 오로지 의평원이 제정한 기준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의평원 평가가 공정함을 유지했기에 지난 20년 동안 신뢰받았다"고 강조했다.
기준 제정과 평가인증은 의평원 고유 영역인 점도 분명히 했다. 결과는 정부에 사후 보고한다. 의평원 예산에서 정부 지원금 비중은 10% 미만이다. 정부 연구 용역 사업비가 여기 해당한다. 그 외 예산은 다른 연구 용역 사업과 대학이 내는 평가인증 비용 등으로 확보한다. 그만큼 의평원 운영에서 "정부가 좌지우지할 지점도 실제로 좌지우지한 적도 없다"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의평원은 지난 1월 새로 고친 평가인증 기준 'ASK 2019(Accreditation Standards of KIMEE 2019)'을 공개했다. 30개 대학이 받는 주요 변화 평가는 여기 맞춰 진행한다. 앞서 30개 의대가 진행한 자체 평가도 이 기준을 따랐다. ASK 2019는 9개 영역에서 36개 부문별로 총 92개 기준을 두고 있다. "기본 의학 교육을 진행하면서 충족해야 하는" 기본 기준이다. 주요 변화 평가는 이 가운데 50여개 기준을 뽑아 활용한다.
올해 하반기 주요 변화 평가 대상인 의대는 2025학년도 입학 신입생 교육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의평원은 계획서를 검토하고 평가단을 대학에 파견해 방문 평가를 진행한다. 대개 교수 70~80명이 참여한다. 1개 대학 평가에 교수 7~8명이 투입된다. 이번 주요 변화 평가는 3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평가단도 확대할 예정이다.
2025학년도 입학생 대상 주요 변화 평가는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매년 실시한다". 해마다 진급에 맞춰 변화하는 교육 과정과 환경을 평가한다. 의학과 진학 뒤 임상실습 진행을 위한 교육병원 준비 평가가 추가되는 식이다. 주요 변화 평가를 시작하는 올해는 2025년 의예과 1학년 교육 과정 계획과 증원에 맞춘 통합 준비 과정 두 가지를 확인한다.
2025년 입학생 교육이 평가 대상인 만큼 인증 결과도 2025년 입학생에게 적용된다. 국시 자격 제한은 "의대가 6년 평가 과정을 거치고도 '인증'을 획득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로 현재 의대 재학생이 아닌 "2025년 입학생"이 대상에 오른다.
의대 졸업자의 면허 취득 제한은 "졸업 후 일차 진료가 가능한 의사"를 배출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안 원장은 면허만 있으면 제한 없이 진료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상 의대에서 "역량 있는 의사를 키워야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 위해를 막는다"고 했다.
"전문가 양성 가치와 어려움 깎아내려서야"
의평원은 기본 술기를 익히는 임상실습은 '단순 관찰처럼 수동적인 방법'이 아니라 '의료진으로서 실제 진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실습 전 단계에서는 '환자 대면'도 교육해야 한다.
학생을 지도하는 기초의학 전임 교수는 총 25명 이상, 임상의학 교수는 총 85명 이상 채용해야 한다. 20개 이상 전문 분야에서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했다.
대학 역할은 채용에 그치지 않는다. 교수가 교육 과정을 숙지하고 "학생을 가르칠 준비"를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본인 교육 과목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포함된다. 전체 의학 교육 과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수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안 원장은 "기초의학 분야는 교수자가 부족해 대체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신규 교수자를 채용한다"면서 "교수자도 의학 분야를 지도하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평가 기준은 "계획의 타당성"을 기반으로 한다. 절대적인 수치를 두는 대신 대학별 사정과 이번 증원 규모를 고려할 계획이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5년 신입생이 의학과로 진학하기 전 의예과 2년 과정 동안 의대 시설과 인력을 보강하겠다는 정부 발언은 "위험하다"고 했다. 정부 생각만큼 "시간이 충분하다고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안 원장은 "연세의대는 생리학을 의학과 1학년에서 가르친다. 반면 1년 앞서 의예과 2학년부터 생리학이나 해부학 교육을 시작하는 의대도 있다"면서 "대학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2년간 준비하면 된다는 건 정부가 하기에 너무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에서 안 원장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사람을 키우는 가치를 깎아내린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평가기관의 장으로서 앞으로 진행할 평가 결과를 함부로 논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 한 명을 키우려면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과 큰 정성을 요한다. 또 그만큼 품을 들여야 전문가가 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학 교육은 시험 통과에만 초점을 맞춘 학원식 교육이 되면 안 된다. 대학 의학 교육 질을 지키고 제대로 교육하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면서 "의평원은 의학 교육 질을 향상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한다는 목표에 따라 이번 평가에 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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