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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행 – 안동 하회마을, 포항 영일대 – 바른지역언론연대

겨울 1월, 과연 여행의 계절인가 여행의 시절인가, 주위의 거의 모든 지인들이 여행을 떠났고 혹은 여행 중이며 또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SNS에는 연일 여행 인증 사진이 올라오고 티브이를 켜면 홈쇼핑 방송 채널은 세계 곳곳의 장소로 저렴한 패키지 비용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본 바에 의하면 페이스북에 여행전문가의 남미 여행 모객이 있었는데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여정과 먼 거리, 많은 비용에도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여행에 사람들이 요즘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얼까.

가만히 짚어본다. 내 여행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지금 이십 대들은 여행이 일상이 될 만큼 부담 없이 여유가 되면 떠나지만 나의 삼십 대, 사십 대 초반에는 먹고사는 일의 기반에 열중하다 보니 여행에 할애할 돈과 시간이 없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되지 않고 시간을 겨우 마련하며 돈이 빠듯하고. 그 시절 우리 세대는 이래저래 마음이 편해야 짐을 꾸려 떠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비슷하지 싶다.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다시는 살아서 병원을 걸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고통과 시간을 견디며 운이 좋게도 건강을 회복하면서 삶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병원을 나와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을 때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인도행 티켓을 예약하고 짐을 꾸렸다. 이후 내게 여행은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자유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현실 도피의 어느 지점쯤에서 일상이 되었다. 그 목적이 무엇이 되었던 미루고 망설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팔순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이 며칠 전 한 달에 만 원씩 넣던 우체국 보험이 만료되어 몇백만 원이 생긴다시며 내게 주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 사양하며 그 돈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여행을 모시고 가겠다고 말했다. 부모님 세대들은 늙어 병이 생길 때까지 그리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 못하셨다. 여유가 좀 생겨 시간이 날 때 여행을 모시고 다니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실 수 있을 때 가장 미루지 말고 해야 하는 일에 첫 번째로 여행을 상기시켜 드린다. 상처가 머문 지금의 자리를 떠나 얼마든지 사람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다웠다고 삶을 기억하시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정식으로 가입해 회비를 내고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단체나 모임이 없다. 책을 내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니 문인 협회나 계간지 등에서 가입 제의가 오기도 하지만 거절하고 있다.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부분에서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안정적이고 더 많은 역할을 지원받을 수 있을 테지만 대체로 수직적인 서열과 형식적인 절차에 매여야 한다는 것은 내게는 큰 스트레스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이가 드니 의지할 수 있는 소속이 가끔 요원할 때가 있지만 아직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관계하는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는 오래 함께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겐 그런 정기적인 모임이 두 개가 있는데 회비를 내어 돈을 모아 유일하게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사십 년 친구 덕이와 현이는 벌써 수년째 회비를 내어 시간이 맞을 때마다 길을 나선다. 사는 곳이 다르고 저마다 하는 일들이 있어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지만 무리하지 않고 여유로운 시간에 언제든 우린 짐을 꾸린다

다른 하나는 지난 연말에 만든 것인데 한 달에 한 번 회비를 모아 사 년 후 함께 한 달살이 여행을 떠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래 먼 곳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각자는 서로의 인품과 성향을 살펴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는 목적이 있는 모임 같지만 사실은 각자의 성취나 이해관계를 가진 만남이 아니기에 그 목적 없음이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일 때문에 인도에서 살고 있는 친구 현이는 잠시 귀국해 빠듯한 시간에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을 가자는 톡을 보낸다.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의 친구와 음식, 자연 속에 걷은 것을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저 먹고 자고 뒹구는 며칠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유난하게 스케줄을 잡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다. 한여름 녹음이 우거진 것도 아니고 가을 단풍길 정취도 없는 겨울 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고요하고 적막한 안동으로 결정했다. 2박 3일 일정에 하루는 가까운 포항 쪽으로 넘어가 바다에서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이 셋을 유혹했다.

하회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무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산등성이 나뭇가지들은 잎을 죄다 떨구고 섬세히 뻗은 가지 끝 하나 놓치지 않고 선명하게 수형을 드러낸다. 들녘에는 휘휘 바람만 지나간다. 해가 잘 드는 곳은 흙을 뚫고 연두 풀들이 자라나 마치 들판은 봄이 온 것 같다. 휘돌아 흐른다는 것은 느리고, 느린 것은 조금 서럽다. 섞여 스밀 때 놓아야 하는 것들이 있어 그렇고 예전의 강 이름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또 그렇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고요의 속도가 주는 위안에 잃은 것들을 잊고 생은 여전히 휘돌아 흐른다. 강을 거슬러 유영하는 물고기가 여전히 살아있다. 너르고 낮게 휘도는 강을 깎아지른 절벽은 가로와 세로, 모순처럼 평온하다.

 

세상에는 변해서 환해지는 것들이 있고 변하지 않아 안도가 되는 장소도 있다. 가끔 들르는 나그네들은 언제 바람처럼 다녀가도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해 주길 원하지만 그것은 주민들이 사명과 자존을 가지고 불편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랜 시간 비포장으로 사람들에게 시간 여행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 병산서원 가는 길도 몇 해 전 수십 년 만에 포장이 되어 무척 아쉬웠다. 비가 오면 길이 질어져 매일 그곳을 걷거나 차를 다고 다니는 주민들은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지켜달라고 전가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다시 그 포장된 길 위로 다른 서사가 머무르며 또 지나가길 바랄 뿐.

하회 마을에 여러 번 왔지만 100년 정도 된 교회를 본 것은 처음이다. 이제껏 이 교회가 왜 눈에 띄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유교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을 가진 하회 마을에 교회라니 뜻밖이었다. 개화기 신문물의 받아들이는 데 관심을 가져서 6.25 때 북한군에게 순교를 당한 류전우 전도사를 배출하기도 했다고 하니 영 마을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구의 뒷모습을 천천히 따르며 600년 삼신당 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아보았다. 야경이 아름다운 월령교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하루를 건넌다.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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