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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보시 마케팅 : ①가진 자를 향한 마케팅 < 주수완의 붓다의 교단 경영법 < 연재 < 기사본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법보신문

종교미술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시각자료를 통해 쉽게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 목적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광고 역할의 비중도 컸다. 부처님 시절에는 아직 본격적인 불교미술이 등장하기 전이었지만, 이후 간다라 불교미술 중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아마도 부처님 시절부터 자주 강조된 내용들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봉발(四天王奉鉢)’, 즉, 사천왕이 부처님께 발우를 드린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불교미술에서는 사천왕이 천왕문에서 절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갑옷을 입은 무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왕공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천왕은 원래 제석천, 즉 인드라의 권속이기도 한데, 이들 인드라와 사천왕은 모두 크샤트리아 계층을 상징하는 신들이다. 반면 브라만 계층을 대변하는 신은 범천, 즉 브라만이다. 따라서 범천은 수행자, 제석천은 왕과 귀족을 상징하지만, 이 귀족은 곧 전사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사천왕이 귀족의 모습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전사의 모습으로 강조되어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크샤트리아 계층의 역할 중에서 무엇을 강조하느냐는 큰 차이로 볼 수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크샤트리아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지녔다. 하나는 나라 안의 브라만 수행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었다. 전쟁은 나라를 지키는 일부터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재물을 빼앗아 자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까지 해당하는데, 한편으로는 나라의 재산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재산을 늘리는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크샤트리아는 그 아래 계층인 바이샤 계층으로부터 세금을 거뒀다.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브라만 수행자들을 봉양하기 위한 비용으로도 쓰였다.
인도미술에서 사천왕은 거의 부처님이 쓰실 발우를 만들어 드리는 장면을 통해서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크샤트리아의 역할 중에서 ‘수행자 보호’가 강조된 것이다. 반면 동아시아 천왕문의 갑옷을 입은 사천왕은 전쟁을 치르는 무사집단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셈이다. 그런데 종교적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이 두 역할 중에서 ‘수행자 보호’가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천왕봉발’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부처님께서 앞으로의 중생구제를 위해 발우가 필요하겠다 생각하신 순간 사천왕은 부처님의 그런 뜻을 알고 각자 얼른 다이아몬드나 금과 같은 귀금석으로 발우를 만들어 바쳤지만, 부처님은 그런 사치스런 발우는 받을 수 없으셨다. 이에 인드라는 히말라야에 있는 알랴산의 바위를 깎아 부처님 발우를 만들어 드릴 것을 조언했는데, 이 돌로 만든 발우는 너무 무거워 일반 사람들은 들 수도 없는 신비한 돌이었다. 이에 네 천왕이 경쟁적으로 바위를 깎아 발우를 만들어 부처님께 드렸는데, 이번에는 부처님께서 누구의 발우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다. 부처님은 하나의 발우만 필요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만 받고 다른 세 왕의 발우는 거절한다면 이 세 왕은 크게 실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서 부처님의 섬세한 배려심이 돋보인다. 부처님은 네 발우를 모두 받아 이를 포갠 다음 손으로 압착하여 하나의 발우로 만드셨다. 그래서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부처님 발우에는 네 겹의 포갠 흔적이 묘사되기도 한다. 결국 부처님 발우는 4중 압착코팅 돌솥 밥그릇이었던 셈이다.
이 설화는 동아시아에서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또 부처님 밥그릇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 밥그릇에 얽힌 내용까지야 더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내용은 크샤트리아 계층에게 브라만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불교 교단에도 보시해 달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발우 그 자체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먹는 것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발우를 드린다는 것은 곧 지속적으로 공양을 드리겠다고 하는 약속과 같다. 한 끼의 식사 대접은 대중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정기적으로 날마다 공양을 드리겠다는 장기계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크샤트리아의 천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하자면 통 큰 기부다. 현대적인 버전으로 말하자면 사후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부호들만큼이나 모범적인 기부를 사천왕이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크샤트리아의 왕공귀족들도 이 사천왕을 본받아 불교 교단에 기부하면 얼마나 멋있어 보이겠는가 하는 광고인 셈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불우이웃돕기, 혹은 해외의 어려운 형편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을 위해 소위 국민배우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을 등장시킨 광고들과 같다. 중국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관우상이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국민배우인 것처럼, 사천왕, 특히 북방다문천왕은 인도에서의 부와 재물의 국민배우다. 그래서 북방다문천은 보물 탑, 즉 ‘보탑’이라는 것을 들고 있는데, 명칭은 탑이지만, 이것은 사리탑의 의미보다는 다문천왕의 보물창고다. 자신의 보물창고를 들어 부처님께 바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발우를 바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이렇게 바뀌었으리라. 특이하게도 공주 마곡사의 사천왕은 사리탑 대신 산해진미가 담긴 듯한 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것이 인도 사천왕의 원형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라만교는 이런 마케팅을 안 했을까? 아마 당시 사회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기에 굳이 광고가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신흥종교였던 불교였기에 필요했겠지만, 그렇다고 자이나교 같은 다른 신흥종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었는지는 뚜렷이 남겨진 것이 없다.
이제는 종단도 불교가 전통종교라는 것에 안주해서는 미래 세대에 대한 포교가 어려울 것이다. 마침 최근 성황리에 불교박람회가 막을 내렸다고 하는데,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아 반갑다.
주수완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indijoo@hanmail.net
[1727호 / 2024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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