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파일

09화 3,000만 원 들고 떠나는 세계여행 – 브런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일기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보자’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어보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받는 몇 가지 단골 질문들이 있다. 로또 됐냐, 유튜버 할 거냐 그리고 얼마 들고 떠나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기에 밝혀보자면, 우리의 1년 세계여행 예산은 3,000만 원이다.

부부의 1년 세계여행 예산이 3,000만 원이라고 답하면 살짝 의아해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마도 예산이 좀 적은 거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일 거다. 우리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한 세계여행은 많은 나라와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 느긋하게 머무르는 한달살기 여행이기에 3,000만 원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 달 치로 환산하면 월 250만 원이고 여기에는 여행하며 먹고사는 비용뿐만 아니라 한 달 숙소비와 항공비까지 포함되어 있다. 24년 2인가족 최저 생계비가 220만 원 정도라고 하니 서울살이였다면 빠듯한 예산이었겠지만 동남아시아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퇴사까지 하고 떠나는 여행인 만큼 호화로운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욜로족과는 거리가 조금 먼 사람들이라(?) 예산을 타이트하게 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정도면 부족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에 올인하느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세계여행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이 첫 목적이기도 했고 말이다. 3,000만 원을 여행 통장에 넣어두고 다른 통장의 돈은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혹시 1년이 되기 전 예산이 모두 소진된다면 부족한 여행 비용은 여행하는 기간에 번 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의 세계여행 비용 계획은 마무리되었다.

발리 한달살기를 마치고 가계부 정산을 하고 있었다. 세계여행 전부터 가계부를 쭉 써왔기에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돈이 잘 안 맞았다. 가계부를 요목조목 뜯어보니 고정비를 1년 예산에 포함시키지 않아 실제 생활비가 예상 생활비를 훌쩍 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정비는 숨만 쉬어도 꼬박꼬박 나가는 돈이다. 짝꿍과 나의 보험비, 번호를 살려둔 한국 핸드폰비, OTT 구독료 등이 있다. 더불어 차마 해지하지 못한 청약과 청년 적금 등이 있었다. 적금과 청약, 경조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다 더해보니 우리의 고정비는 1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사실 고정비 100만 원도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폭풍 다이어트를 했기에 가능했던 금액이었다. 

이미 모든 통장 정리가 끝난 상황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담?…

고정비를 여행 예산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이 됐다. 포함을 시키자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여행 비용이 줄어들고, 제외하자니 미래를 위해 남겨놓은 돈을 건드려야 했다. 고민 끝에 고정비를 예산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한 달 생활비 250만 원에 100만 원 정도의 고정비를 빼고 나니 우리가 실제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비상이었다.

고정비를 여행 예산에 포함시키기로 한 이후,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사실 퇴사 이후 버는 돈 없이 쓰기만 하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 심지어 짝꿍은 이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짝꿍이 돈 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 혼자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결국 돈 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첫 시도는 구글 애드센스 광고였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고 ChatGPT로 온갖 과일과 채소의 효능에 관한 글을 작성해 올렸다. 블로그에 애드센스를 다는 것이 쉽지 않아 애드센스 고시라고 부른다던데 신기하게 한 번에 통과하고 나니 순진하게 ‘나 잘되려나?’ 생각이 들었다. 티스토리에 쿠팡 파트너스도 연동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노마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스마트 스토어, 해외 직구 등등… 이거 하면 월천 벌어요!라고 외치는 많은 것들에 기웃거렸다. 나도 월천 벌어야지, 홀린 듯 생각했다. 

티스토리에 가지의 효능을 적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ChatGPT가 써주는 글을 복붙하며 돈을 벌려고 퇴사한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돈! 돈! 할 거면 뭐 하러 퇴사했지? 퇴사와 여행의 목적을 잊은 채 관심도 없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보려 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퇴사하며 돈에 대한 욕심과 불안함을 많이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여전히 돈에 대한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급해하는 마음을 일기에 털어놓으며 다독였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과 돈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겨우 세계 여행 2개월 차였다. 짝꿍도 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라며 나를 응원해 줬다.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기웃거렸던 모든 것을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었다. 기승전’책’인 이유는 여행 초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책 읽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 두세 권씩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책과 책사이의 간격을 둘 겸, 책의 내용이 휘발되지 않도록 붙잡아 둘 겸, 겸사겸사 도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책 읽고 블로깅하는데 하루를 꼬박 써도 아깝지 않았다. 책과 함께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마음속 외침에 하고 싶은 일이 먼저다!라고 대답 했다.

발리에서 보냈던 두 달은 세계여행 중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막상 1년의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몰라 헤맸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 해놓고 여행 유튜브나 수익형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돈 벌 궁리를 했고, 유명한 여행 코스를 따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거 같아 맞지 않는 여행을 했다. 다행인 것은 이리저리 마음껏 흔들리다가도 결국 오뚝이처럼 제자리를 찾아 오뚝- 섰다는 것이다. 세계여행 9개월 차인 지금, 그때를 떠올리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두 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태국 방콕으로 간다. 발리에서 이미 숙소, 여행, 돈 등등 온갖 고민, 걱정을 다 해뒀기에 우리에게 맞춘듯한 편안하고 행복한 방콕 한달살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사하고 여행하는 흔한 부부의 여행이 드디어 안정기에 들어서게 된다.

ps. 현재는 예산을 모두 사용해 계획대로 매달 번 돈으로 여행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유럽 여행 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세계를 여행하며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읽고 쓰고 그리고 있어요.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source

Keep Reading

이전다음

댓글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