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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탐욕 부추기는 한국정치, 이게 정상인가? – 시민언론 민들레

 
영화 <강남 1970>은 강남 개발로 선거자금을 조달하는 정치 권력의 도구가 되어 쓸 때 쓰고 버려지는 깡패들의 이야기입니다. 강남에서 발원한 한탕주의 땅 투기가 상류층 사회로 퍼져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개발시대를 지나 부자동네가 된 강남의 중학교에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젊은 남자 교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교단에 설 때는 나름대로 신성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는데,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점점 희미해집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기 초에 첫 대면을 하면, 애인 있어요? 따위는 묻지 않습니다. 선생님, 집 있어요? 몇 평이에요? 차 있어요? 무슨 차예요? 요즘 아이들은 숫자로 계급을 정합니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을 말이죠.”
<강남 1970>은 마용성으로 노도강으로 한강벨트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인근 주민들이 기를 쓰고 반대합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건 계급의 추락을 의미합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너, 세상에서 완벽하게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비행기 안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그 사이엔 커튼 하나만 있을 뿐인데 아무도 그걸 못 넘어.”
한국 영화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기생충>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아무튼 그 양반, 전반적으로 말이나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도 선을 안 넘어.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1%와 99% 사이에는 선이 하나 그어져 있을 뿐인데, 한국 사회에서 99%가 그 선을 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입니다. 1%는 99%가 선을 넘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나는 니들과 달라. 그래서 투표 행태도 다릅니다. 왜냐구요? 같은 게 싫으니까.
1% 옆의 9%는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1%이고자 합니다. 재력이 달리니 소비 행태는 그들처럼 하지 못하지만 투표는 그들처럼 합니다. 그걸 계급 투표라고 하더군요.
분당이 압구정이 되고, 이른바 마용성이 강남이 되고, 노도강은 마용성이 되려 합니다. 왜냐구요? 같은 지역구에 살지만 내 아파트는 이 동네에서는 비싼 아파트니까요. 이 동네의 강남이니까요.
인터넷 뒤적이다 우연히 본 코미디 프로에 이런 게 있더군요. 네 친구가 사는 곳에 대해 얘기하는 코미디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내용입니다.
A가 B에게 묻습니다. 너, 화성에 산다고 했지? 그러자 B가 대답합니다. 아니, 동탄이야. A가 다시 묻습니다. 동탄이 화성 안에 있는 거 아니야? B가 짜증을 냅니다. 아니야. 동탄은 화성과 달라.
A가 C에게 묻습니다. 넌 집이 어디야? 성남이라고 했나? B는 무심하게 답합니다. 아니, 분당이야. A가 다시 묻습니다. 분당이 성남에 있는 거잖아? C가 신경질을 부립니다. 아니라니까!
A가 D에게 묻습니다. 너는 집이 용인이라고 했지? D가 답합니다. 난 수지에 살아. A가 수지도 용인에 있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D도 화를 냅니다. 수지는 용인하고 달라!
D가 A에게 묻습니다. 너는 인천에 산다고 했지? A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송도에 살아. D가 다시 묻습니다. 송도가 인천이잖아? A가 발끈합니다. 송도라니까. 송도!
한국은 사는 지역과 아파트 이름과 평수로 계급이 나뉘는 부동산 공화국입니다. 졸부들의 천국입니다. 빚 내서 집 사라고 하던 나라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이 아니라 영끌로 산 아파트가 대박의 꿈을 이뤄줄 거라고 유혹하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집값이 폭등하여 부모가 집을 사주거나 물려주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내 집은 꿈도 못 꾸고 그리하여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나라입니다.
정부도 언론도 출산율이 낮아 국가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고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리는 한편에서는 집값 올려줄 테니 표를 달라는 나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집권당인 국민의힘도 그랬습니다. 집값 올려주겠다는 노골적인 유혹이 선거 공약이 되는 나라입니다. 김포를 서울로 편입시켜주겠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주겠다는 공약도 그런 범주에 들어갑니다. 반면, 재산세 얘기는 감히 꺼내지도 못합니다. 가진 만큼 세금을 내는 게 조세 정의인데도 말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하니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갈라서 가난한 사람은 계속 민주당을 지지하게 하려고 고의로 집값을 폭등시켰다는 겁니다. 그런 주장을 해도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런 발언을 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 그런지, 한국의 법은 보수에게 관대해서 그런지, 흑색선전이고 선동이라 해도 무방한 주장을 해도 아무 탈이 없습니다.
젊은 세대는 정치를 혐오합니다. 삼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온 게 10년이 넘은 거 같은데 N포 세대를 지나 이젠 자포자기 세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껐고 투표를 포기했나 봅니다. 반면에 재산이라곤 아파트가 전부이니 집값 올려 부자는 되고 싶고 세금은 내기 싫은 '강남 지향성' 기성세대 유권자들은 격렬하게 계급 지향 투표를 합니다.
언론이 천편일률적으로 기계적으로 토해내는 선거 분석이 식상하고 지긋지긋해서 내키는 대로 써봤습니다. 이런 선거 분석을 언론에서 보고 싶습니다. 강남에서, 분당에서, 마용성에서 탐욕의 졸부 근성이 결국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 거라고 설파하는 언론을 보고 싶습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입니다.
 
정권 심판으로 불린 이번 총선의 중심에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있었습니다. 주가조작, 명품백 선물, 구부러진 양평고속도로… 절제 없는 탐욕, 법을 농락한 축재. 이번 총선의 의미를 <더 글로리>의 명대사로 설명하면,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형벌과 천벌의 사이 어디쯤에서 멈춘 게 아닌가 합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누구에게는 욕망이지만 누구에게는 절망인 ‘한강 벨트’라는 조어를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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