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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시지프스 후예들의 제전' 마스터스가 보여준 골프 만화경 – 골프한국

 
 
[골프한국] 4월 12~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코스에서 펼쳐진 나흘 간의 지구촌 골프제전 제88회 마스터스가 한바탕의 만화경(萬華鏡)을 펼치고 막을 내렸다.
다시 굴러떨어지고야 말 바위를 산 정상에 밀어 올리는 절망의 노역을 짊어진 ‘시지프스의 후예’들은 신들이나 노닐 비밀의 정원에서 잠시 절망을 잊었다. 마스터스로 향하는 ‘좁은 문’ 티켓을 거머쥔 지구촌의 별 89명 모두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겠다는 희망을 품고 회심의 샷들을 휘둘렀다. 
 
세계랭킹 1위 스카티 셰플러가 바위를 아크로 코린토스 산 정상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2위 루드비그 오베리(스웨덴)에 4타 앞섰다. 그가 정상에 밀어 올린 바위도 언젠가 밑으로 굴러떨어지겠지만 올해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에서 그는 압도적이었다. 2022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되었다.
올들어서만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과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 이어 마스터스까지 거머쥐며 3승을 거뒀다. PGA투어 통산 9승째다. 고교 때부터 사귄 아내의 출산이 임박해 “우승 직전이라도 연락이 오면 집으로 달려가겠다”고 약속한 그는 다행히 출산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우승 소식을 알리는 행복을 맛봤다.
 
우승 가망이 없는 타이거 우즈의 분투는 그가 시지프스의 직계임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최종 합계 16오버파 304타로 컷 통과 선수 중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마스터스 연속 컷 통과 24회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마스터스에서 5차례 우승한 그는 대수술 이후 대회 출전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번 마스터스에서 2라운드까지 중간 합계 1 오버파로 컷(6오버파)을 가볍게 통과했다.
부상 이후 그가 출전한 대회에서 보여준 정황들을 고려하면 4라운드  경기는 무리인 듯 보였으나 별들의 경연장 마스터스에서의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바이런 넬슨과 공유하고 있는 PGA투어 통산 82승 타이기록 돌파 의지가 읽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의 승수 추가는 비관적이다. 그의 팬들도 ‘우즈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마케팅 측면에서 우즈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고 우즈 또한 라운드 지속 열정이 강하기에 그가 시지프스의 노역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골프팬들도 우즈가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마지막 라운드에 나서길 고대하고 있는 듯하다.
우즈는 오는 5월 17일부터 나흘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발할라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타이거 우즈가 아들 찰리 우즈에게 닮으라고 강조하는 스윙의 주인공 로리 맥길로이는 자신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 완성에 필요한 마지막 퍼즐인 그린재킷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했으나 합계 4오버파로 공동 22위에 만족해야 했다.
 
처음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루드비히 오베리(24)는 PGA투어에 위협적인 공습경보를 울렸다. 스웨덴 태생으로 텍사스 공대를 나온 오베리는 대학 골프선수 시절부터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스웨덴의 타이거 우즈’란 별명을 듣고 있는 신병기다.
190.5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브 샷은 일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잘생긴 데다 스윙도 부드럽고 아름다워 PGA투어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다. AI가 탐내 익혀야 할 스윙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돈을 좇아 LIV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의 그린재킷 쟁탈전은 흔들림 없는 스카티 셰플러 앞에서 무력했다. 이적 후에도 PGA투어의 달콤한 기억을 그리워하는 디펜딩 챔피언 존 람은 합계 9오버파로 공동 45위로 추락했고 잠시 우승 경쟁에 나섰던 브라이슨 디섐보가 합계 2언더파로 공동 6위에 올라 체면을 세웠다.
5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몸값을 받고 LIV골프로 옮긴 필 미켈슨은 합계 8오버파로 공동 43위에 머물렀으나 여전히 부드럽고 우아한 스윙으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안병훈이 최종 2오버파 공동 16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고 김주형과 김시우는 5오버파 공동 30위에 올랐다. 안병훈은 최근 경기에서 중량감을 보이며 상위권을 유지해 흐름이 좋다는 느낌이 왔다.
김주형은 마지막 라운드에서만 데일리 베스트인 6언더파를 몰아쳐 우즈가 “오늘은 김주형처럼 하고 싶었는데…”라고 말할 정도로 불꽃 같은 라운드를 펼쳤다. 임성재는 7오버파로 컷 탈락했다.
 
마스터스의 진정한 마력은 설립자 바비 존스와 로버츠 클리포드의 골프 철학이 담긴 골프코스에서 벌이는 시지프스 후예들의 경쟁하는 모습 자체가 아닐까 여겨진다.
 
선수들은 공기처럼 코스를 매운 골프 팬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휩싸여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고 카페트를 방불케 하는 잔디와 온갖 꽃으로 장식된 신들의 정원에서 노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골프선수들은 알을 낳기 위해 해변 모래밭을 찾는 거북이처럼,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철새처럼, 수천km를 비행하는 앨버트로스처럼 마스터스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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