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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발할라의 영웅' 잰더 쇼플리의 겸손한 골프 – 골프한국

 
 
[골프한국] 마스터스 토너먼트, PGA챔피언십, US오픈, 디오픈을 세계 골프의 4대 메이저라 일컫는다. 여기에 상금이 가장 많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더해 5대 메이저라 부른다. 프로 골퍼라면 누구나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 해에 4대 메이저를 석권하면 그랜드 슬램이라 한다. 구성(球聖) 바비 존스(1902~1971)만이 한 해에 당시의 4대 메이저(US오픈,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디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를 모두 석권하는 진정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평생에 걸쳐 4대 메이저를 우승하는 것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 한다. 남자 골프의 경우 진 사라젠,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5명만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여자골프의 경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려면 5대 메이저(더 셰브론 챔피언십, US여자오픈,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에비앙 챔피언십, AIG 위민스 오픈)를 우승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루이스 석스, 미키 라이트, 팻 브래들리. 줄리 잉스터, 캐리 웹, 아니카 소렌스탐에 이어 박인비가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되었다.
 
5월 20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발할라 골프클럽(파71)에서 막을 내린 제106회 PGA챔피언십(총상금 1,850만 달러)은 3월의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4월의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이은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다. 6월과 7월에 US오픈과 디오픈이 이어진다.
 
세계의 톱 클래스 선수 146명이 출전, 78명 만이 컷을 통과하고 나머지 65명이 2회전에서 탈락하고 3명이 기권했다. 탈락자 명단에는 화제를 모았던 타이거 우즈와 존 람을 비롯해 맷 피츠패트릭. 아담 생크, 테일러 펜드리스, 닉 테일러, 제프 스트라카, 아담 스콧, 필 미켈슨과 한국의 임성재, 김시우 등이 포함됐다. 존 댈리와 벤 그리핀, 한국의 이경훈은 기권했다. 
 
잰더 쇼플리(30)가 괴력의 브라이슨 디섐보의 거센 추격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트로피를 차지했다. 첫 라운드부터 9언더파를 쳐 선두로 나선 쇼플리는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켜 최종 합계 263타 21언더파로 첫 메이저 우승을 와이어 투 와이어로 장식했다.
 
1타 차로 연장전 기회를 놓친 브라이슨 디섐보, 3위 빅토르 호블란, 공동 4위 토마스 디트리, 콜린 모리카와, 공동 6위 저스틴 로즈, 셰인 로리, 공동 8위 빌리 호셸, 스코티 셰플러, 로버트 매킨타이어, 저스틴 토마스, 공동 12위 알렉스 노렌, 테일러 무어, 로리 맥길로이, 리 호지스, 사히스 티갈라 등 리더보드 상단에 오른 이름들을 보면 우승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키 177.8cm, 몸무게 79.4kg의 쇼플리는 얼핏 다른 선수들에 비해 왜소해 보이지만 겸허함에 결단력을 갖춘 그의 경기력은 난공불락이었다. 17번 홀(파4)까지 20언더파로 디섐보와 동타를 이룬 그가 연장 없이 우승하기 위해선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버디가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길지 않은 파5 홀이었으나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의 벙커 앞에 떨어지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이언으로 공을 그린 앞에까지 보내고 어프로치샷으로 홀 1.8m 앞에 붙인 뒤 버디 펏을 성공시켰다.
 
겸허한 골프가 위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PGA투어 통산 8번째 우승이자 2022년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 우승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거둔 우승이다. 21언더파는 역대 남자 골프 4대 메이저 대회 사상 최다 언더파 신기록이기도 하다.
 
2021년 도쿄올림픽 남자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이 대회 전까지 12개 대회에 출전, 8번 톱10을 기록했으나 번번이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 우승으로 한꺼번에 씻어냈다. 
 
대회가 열린 골프클럽의 이름 ‘발할라(Valhalla)’가 쇼플리의 우승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 같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자리잡은 이 골프 코스에 왜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발할라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쇼플리의 우승으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발할라는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유래된 말로 북유럽 신화에서 죽은 전사들이 머무는 유택(幽宅)을 의미한다.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전사들이 전투에서 사망하면 오딘(전쟁의 신, 영웅들을 수호하는 신으로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신)이 라그나로크(최후의 날) 전투에 대비해 죽은 전사들을 발할라로 데려갔다고 한다.
 
발할라는 방패로 지붕을 덮은 궁전으로, 부름을 받은 전사들은 이곳에서 날마다 염소의 젖통에서 나오는 술을 마시고 밤마다 산돼지로 잔치를 벌이면서 서로 전투를 벌이며 놀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라그나로크까지 살다가 그때가 되면 오딘의 명을 받아 거인과 괴물 무리의 적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한다. 북유럽의 신화는 오딘이 이끄는 신들과 그를 따르는 전사들, 그리고 적들 간에 벌어지는 이 전투로 신과 거인, 괴물뿐만 아니라 우주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발할라 골프 코스에서 벌어진 PGA챔피언십을 골프 애호가의 시각에서 보면 라그나로크 전투와 흡사하다. 적어도 2024년의 골프 전쟁을 판가름 짓는 대전투에 비유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이 골프코스는 드와이트 갬(Dwight Gahm, 1919~2016)이란 골프애호가가 작심하고 만들었다. 최고의 골프장을 목표로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하고 1986년 개장한 뒤 PGA챔피언십 시니어PGA챔피언십, 라이더컵 등 월드클래스 대회가 열렸다. 설립자 드와이트 갬은 어릴 때 캐디를 하며 골프와 인연을 맺은 뒤 미식 축구선수를 하다 인디애나대학을 거쳐 하버드에서 MBA학위를 받고 사업에 성공, 이 골프 코스는 물론 골프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PGA투어 발전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발할라 전투에서 승리한 잰더 쇼플리는 타이거 우즈만큼이나 많은 피가 섞였다. 어머니는 중국계(타이완)로 일본에서 성장했고 아버지 슈테판은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슈테판은 젊은 시절 독일 10종 경기 선수로 훈련장으로 가다 음주 운전 차량에 받히는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했다. 미국 샌디에이고로 이주한 슈테판은 골프를 시작했지만 선수로 나서지는 않고 클럽 프로로 활동하며 아들을 PGA투어 선수로 키워냈다.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마스, 대니얼 버그, 에밀리아노 그리요(아르헨티나) 등이 잰더와는 샌디에이고 라호야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쇼플리는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캐디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는 금메달을 본딴 금반지를 만들어 줄 만큼 마음이 따뜻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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