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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해준 것은 정치가 아닌 예술” – 시사저널

“목 디스크 때문에 서서 작업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김환기는 캔버스 위에 점 하나하나를 그리는 작업을 하루 종일 했다. 베토벤은 말년의 극심한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화합과 희망을 노래하는 불멸의 곡들을 남겼다. 폐결핵은 악화되고 조르주 상드와도 이별해 외롭게 된 쇼팽은 그래도 피아노 건반을 떠나지 않고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송과 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정치 얘기만 하면서 살았던 정치평론가 유창선씨가 움트는 봄날 문화예술을 논하는 책을 불쑥 내놨다. 그는 예술작품들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단지 작품 자체에서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때까지 혼신을 다했던 예술가의 투혼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존엄하고 귀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어디 음악만이 그렇겠는가. 모든 예술이 그러하다. 그래서 예술이 고마운 것이다. 예술은 또한 자유이다. 정치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예술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예술가들에게는 금기도 성역도 없었다. 내가 감히 못 하던 것을 그들이 하는 것을 듣고 보니, 비겁하지만 그 또한 위로가 된다.”
유씨가 예술이 주는 감흥과 행복감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병상에서였다.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8개월 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밤 9시만 되면 일제히 소등되는 병실에서 유씨는 밤마다 이어폰을 통해 휴대폰에 담아놓은 음악들을 들었다. 깜깜한 병실에서였지만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들을 들으며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더없이 편해졌다. 50대의 끝자락을 보내던 유씨는 병실에서 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고마움에 비로소 눈뜨게 된 것이다.
“지난 세월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무겁고 날 선 얘기를 하며 살다 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내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향해 있었다.”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고 이야기하는 유씨는 병원에서 나오면서 이제 남은 생은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연주회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때 유씨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다 나은 것 같은 힘찬 모습이었다.
“평생 갖고 살았던 정치나 이념 가득한 삶이 결코 줄 수 없었던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예술이 주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들 한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예술을 접하는 데는 나이가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한 편의 교향곡이나 그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생각할 수 있는 깊이를 갖게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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