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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연속성의 고리 찾아 떠나는 구도심 골목길 여행 "출발!" – 고양신문

관산, 고양, 원당, 삼송, 토당, 일산 
고양 6개 구도심 차례차례 찾아다니며
사라져가는 풍경 사진 찍고 기록하고
평범한 일상의 온기와 가치 찾아내고파 

[고양신문] 수년째 구상만 하던 연재를 드디어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고양시에 흩어져 있는 구도심들(관산동, 고양동, 주교·성사동, 삼송동, 토당동, 일산1·2동)을 차례차례 찾아가 골목길을 걷고, 사진을 찍고, 인상적인 풍경들을 기록하려는 것이다. ‘구도심’이라 싸잡아 부르지만, 사실 이곳들은 서울 북부 농촌지역이었던 고양땅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경제성장기를 거치는 근·현대의 시간 동안 인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도시의 원형을 형성해온 곳들이다. 
길 따라 만들어진 6개 구도심 
구도심은 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능곡’이라 부르는 토당동 일대와 ‘구일산, 또는 원일산’이라 부르는 일산1·2동 지역은 경의선 개통과 함께 역 주변의 발전이 뒤따른 곳들이고, ‘신도’라는 옛 지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삼송동 일대와 여전히 ‘벽제’라고도 불리는 관산동 지역은 1번 국도(통일로)변에 자리하며 성장한 도심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가면, 고양을 지나는 가장 큰 길은 개성과 파주, 한양을 잇는 의주길이었고, 그 길 위에 점을 찍은 동네가 바로 고양동이다. 그리고 이들 다섯 구도심을 십자 모양으로 연결(삼송-일산, 고양-관산-능곡)하는 교차점에 ‘원당’이라 불리는 주교·성사동이 자리한다. 
이처럼 구도심은 우연히 형성된 게 아니라, 사람과 재화의 이동과 집결이 용이한 거점을 따라 시기를 달리하며 만들어졌다. 구도심과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고양의 6개 지역농협 본점이다, 신도농협은 삼송동, 일산농협은 일산2동, 지도농협은 토당동, 벽제농협은 관산동, 원당농협은 성사동에 자리하고 있다(다만 송포농협 본점이 자리한 송포동은 원도심 주변이 대부분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상태라 구도심 골목여행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고양의 6개 구도심을 답사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대규모 택지개발 이전에 형성된 고양의 풍경이 오늘날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기록하고, 거기에 깃들어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머잖아 소리없이 사라져버릴 풍경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일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이유는, 더이상 늦출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고양신문이 자리한 원당만 해도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호국로 주변의 나지막한 상가건물들이 하나둘 고층빌딩으로 재건축되고 있고, 1980년대 초 고양에서 가장 먼저 계획도시 형태의 주택단지가 조성됐던 주교동 연립·빌라단지는 원당1구역 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며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박완서의 소설 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제목이 있는데, 철거돼 사라지는 마을을 보면 그 말이 정말 실감난다. 풍경이 사라진 자리를 새로운 풍경이 채우고 나면, 과거의 풍경은 기억과 감각에서 잊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재개발로 마을이 한꺼번에 철거되지 않더라도, 개별 재건축이나 증·개축, 각종 공사 등으로 구도심의 흔적들은 누구에게도 기록되지 못한 채 수시로 사라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 의미를 지니거나, 중요한 인물과 관련 있는 장소나 유물이라면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지역공동체의 기억 속에 저장된다. 하지만 고양의 구도심처럼 서울 변두리 어디나 비슷한, 서민들이 살았던 평범한 풍경들은 좀처럼 기록되거나 기억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가림막 너머에서 흔적도 없이 철거돼버린 원당1구역의 빌라와 연립, 저층아파트들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고, 계절을 따라 봄꽃과 가을단풍이 골목길을 채워줬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근거는 수년 전 그 동네를 산책하며 남긴 몇 장의 사진들뿐이다.  
평범한 삶의 연속성을 찾아서 
누군가는 낡고 불편한 구도심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답을 하자면, 그 속에   삶의 연속성을 설명해주는 힌트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담보해주는 문화적 상징체계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한반도 농경문화가 시작된 오천년가와지볍씨, 북한산성과 행주산성과 여러 기의 조선왕릉, 면면히 이어오는 전통문화예술, 그리고 고양팔현으로 대표되는 고양의 자랑스러운 인물 등이 있지 않냐며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으로 지역적 정체성을 계승할 수 있다고 믿는 인식의 체계에는 틈새가 존재한다. 선사시대나 조선시대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의 삶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문화적 상징들은 권력, 또는 문화 기득권자에 의해 선별된 가치나 대상을 조망할 뿐, 보편적이고 평범한 존재들의 일상까지는 담아내지는 못한다. 
필자는 실제로 오늘날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과거는 말할 것 없이 바로 수십년 전의 과거, 그러니까 본격적인 경제개발기 이후 이촌향도의 물결에 의해 서울 주변 인구가 증가한 이후의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구도심의 골목길과 낙후된 건물들이 드러내는, 또는 숨겨놓은 풍경 속에서 오늘날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의 고리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특정한 시간을 간직한 흔적, 도시화석 
구도심 답사는 다른 말로 ‘도시화석 찾기’일 수도 있다. 도시화석이란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텐데, 말 그대로 한 도시와 마을의 특정한 시간을 간직한 흔적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도시문헌학자이자 프로 답사가인 김시덕 박사의 책(『서울선언』, 『갈등도시』 등)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데, 구도심 답사자에겐 이정표 같은 말이라 여겨 곧바로 마음에 새겨넣었다.
도시화석이 뭔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양시청 아래 교차로의 한 빌딩 벽에는 ‘00파출부’라는 입체글씨간판이 부착돼 있다. 파출부라는 명칭은 가사도우미로 대체된 후 일상에서는 이미 퇴출된 단어다. 하지만 구도심의 여러 빌딩들에는 여전히 ‘파출부’라는 간판이 이곳저곳에 붙어있다. 주교동과 성사동에서 찾아낸 것만도 여럿이다. 대개 사무실은 진작에 문을 닫았고, 미처 떼어내지 못한 간판이나 선팅글씨만 남아있는 경우다. 이런 게 바로 가까운 과거를 품은 ‘도시화석’이라 할 수 있다. 
고고학적 화석과 도시화석은 과거를 증언해준다는 면에서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존속 가능성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지층 속 화석이 발견되면 학계나 연구기관에서 조사와 보전에 온힘을 쏟지만, 도시화석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방치되다가 공간의 변화와 함께 소리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번에도 간판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원당 중심을 가로지르는 호국로에 자리한 한 빌딩에는 몇 년 전까지 시선을 끄는 이름이 하나 붙어있었다. 오른쪽 맨 위에 입체글씨간판으로 써붙인 ‘엘칸토 문화쎈타’ 말이다. 엘칸토는 조그만 제화점에서 출발해 대표적인 패션구두 브랜드로 성장한 회사인데, 일찌감치 문화사업에도 정성을 쏟아 자체적으로 문화센터를 운영했었다. 지금으로 치면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이런저런 강좌를 개설해 여가시간이 있는 중산층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시설이었다. 그런 고급스러운 문화시설이 원당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사실이 고양지역에서 원당이 차지하는 위상을 방증해준다. 
하지만 ‘엘칸토 문화쎈타’ 간판은 2017년 건물이 구청의 간판정비사업 대상이 되면서 사라져버렸다. 건물 외관은 깔끔해졌지만, 흥미로운 도시화석 하나가 또 없어진 셈이다. 이번에도 다행히 사진 한 장이 남았다. 
관계망의 힌트가 되는 가게·매장 간판
이처럼 골목답사에서 많은 정보를 주는 요소는 바로 매장과 간판이다. 간판은 곧 업종이다. 한 골목에 어떤 업종들이 분포하고 있는지(혹은 있었는지)를 살피면, 그 골목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혹은 살았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청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는 ‘중국식품점’이라는 커다란 붉은색 한자 간판을 내 건 가게가 카페, PC방, 노래방과 함께 당당히 영업을 하고 있다. 중국식품점이 있다는 얘기는 주변에 중국인(주로 조선족이지만, 최근에는 한족도 늘고 있다)들의 일자리가 있거나 거주지가 있다는 얘기다.
시청 주변의 경우는 후자다. 80년대 중후반에 당시 고양군청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모텔들이 구도심 유흥상권의 퇴조와 함께 하나둘 숙박비가 저렴한 ‘달방’으로 전환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처럼 눈에 띄는 매장 하나를 들여다보면 관계망의 힌트가 되는 여러 정보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온다. 
손글씨로 인연 이어간 ‘영심이분식집’ 
도시화석에는 간판, 이정표, 기념석, 조형물 등 여러 종류가 있을텐데,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종류가 바로 사람이 직접 쓴 손글씨다. 골목길 답사가 결국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인데, 손글씨야말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누군가의 마음이나 입장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원당1구역이 철거되기 전, 철수가 마무리된 건물의 셔터문에 부착된 손글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영심이’라는 상호의 분식집을 운영하던 주인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랑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심이’라는 손글씨 인사를 단골들에게 남겼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까운 곳으로 이전해 장사를 계속 이어간다는 안내지도를 함께 붙였다. 재밌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한 장 찍어둔 게 어느새 2년 전의 일이다. 
연재를 시작하기 위해 과거 사진을 뒤적이다가 잊고 있었던 영심이 분식집 손글씨 사진을 발견했다. 2년 전 철길 건너편 지하차도 옆으로 이사를 갔다는 ‘영심이분식집’은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을까? 찾아가보니 반갑게도 ‘영심이’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내걸려 있었다. 2년 전에 찍어둔 사진이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인사를 전하니, 편안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가 무척 반가워하신다. 
철거된 건물에서 20년 넘게 떡볶이와 튀김을 팔았던 사장님은 새로운 가게에서 냉면과 제육덮밥 등 메뉴를 더 많이 늘렸다. 다행히 장사는 이전보다도 더 잘된다고 하신다. 멀리 흩어졌던 이웃들 중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는 이들도 많단다. 
손글씨가 이어준 영심이분식집 사장님과 이웃들의 이야기는 구도심 골목길의 도시화석이 지닌 온기와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앞으로 이어질 여정에 이런 재미난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한다.
시간 날 때마다 이어질 고양의 구도심 골목길 답사, 또는 도시화석 탐사 여행에 독자들도 관심 있게 동행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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