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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엔 너무 멀고, 자전거 타기엔 위험하고,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제주의소리

마흔 살에 운전면허 시험을 봤다. 환경을 생각해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제주 시골살이를 준비하면서 무너졌다. 갓 돌을 지난 아이와 함께하는 농촌 생활은 자가용을 필수재로 만들었다. 제주 읍면지역의 버스 배차 간격은 길어도 너무 길었고, 동선(노선)은 한정적이었다. 물론 대중교통체계 개편 후에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중산간 마을에서 버스를 이용하긴 여전히 힘들다. 
22일(어제) 열린 제주도의회 본회의, 교육감을 상대로 한 교육행정질문에서 학생들의 등교 시간대 버스 이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중학교가 없는 외도지역 중학생들의 통학 시간대 버스 이용 불편과 신성여중고의 만원 버스에 대한 대책을 교육감에게 묻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22일은 지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지구의 날이었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지구의 날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우리 삶의 변화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의 홍수나 가뭄 혹은 북극곰이나 거북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삶을 흔들고 있다. 지난 총선 민심을 좌우한 875원 대파는 기후위기 영향이다. ‘금사과’로 불리는 평범한 과일 사과의 배신 역시 사과를 재배하기 힘들어진 기후변화 때문이다. 시민들을 장보기 무섭게 만든 농산물 가격의 폭등은 기후위기가 그 원인이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일이라거나 특정한 동물들이 고통을 겪는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 밥상 풍경을 바꾸고 있다. 
기후위기는 밥상 물가를 넘어 일자리까지 경제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위기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제주 지역에선 해수면 상승부터 수온 변화까지 바다와 땅 모든 지역에서 위기 신호가 드러나고 있다.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올 장밋빛 미래는 기후위기로 인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학교현장의 기후위기 교육은 어떠해야 할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쓰레기를 줍거나 분리수거를 잘하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구조는 그대로인데, 쓰레기를 줍거나 분리수거를 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생활하는 모든 방식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제주지역은 수송부문의 탄소배출량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전체 탄소배출량의 50% 가까이가 수송부문에서 배출된다. 전국 탄소배출량에서 수송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5% 정도임을 고려하면 제주도에서는 수송부문 배출량이 3배가 넘는 셈이다. 수송부문 배출량의 대부분은 자가용 운행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자가용 중심의 교통체계가 유지되는 한 제주에서 탄소배출량이 줄어들긴 힘들다.
기후위기 교육은 생활 교육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제주에서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교통부문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이외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장려하려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교통수단이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지만, 학교는 걷기엔 너무 멀리 있고 자전거를 타기엔 너무 위험하다. 그나마 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통학 시간대에는 배차 간격이나 복잡해서 이용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가용을 이용하지 말라고 교육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기후위기 교육이 교육청의 노력만으론 힘든 까닭이다.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고 대중교통 수단을 편리하게 만드는 일이 함께 되어야 한다. 학교 가는 길에 탄소배출을 줄이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고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외도중이나 신성여중고를 다니는 학생들을 지표로 삼아 안전한 탄소통학로를 만드는데 지역사회가 힘을 모으는 일이 기후위기 교육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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